나는 매일 북창동을 다니는 여자다

…물론 순두부찌개 얘기는 아니다.

 

 

 

다니는 운동스튜디오가 시청에 있다. 안전한 대로변. 반면에 집에 돌아가는 버스는 대로 반대편으로 들어가 반대로 나와서 타야 한다. 외진 곳도 아니고 그냥 대로변 사이 큰 블럭인 서울 한복판이다.

둘쨋날부터였던가, 7시 수업을 듣고 8시 반쯤 나오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했다. 길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에 멈춰서서 사람들을 뚫어져라 보면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다섯째날쯤 되니 그 눈들 중 대부분은 양복 입은 남성들이고, 그들 중 대부분이 상당히 취해있으며, 귀에 인이어를 차고서 길 한복판에 서 있다가 그 양복 입은 취객들을 붙잡는 맨정신의 사람들 역시 남성이라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주변 가게들도 다시 보였다. 고깃집 노래방 많은 여느 서울골목같았지만 고깃집 곱창집의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알록달록하게 보이는 것은 노래’주점’이었고, 여느 노래방과 다른 것들이 적혀있었다. 시간당 얼마 기본 얼마 항시대기 어쩌고. 그런 주점이 있는 곳 앞에는 의자를 두고 앉은 호객꾼들도 많다.

네이버지도를 열어서 주변 건물을 아무거나 찍었다. 세종대로**길. 남대문로**길. 상세보기를 눌러서 구주소를 확인하니 알 수 있었다.

내가 매일 운동 끝나고 집에 갈 때 통과하는 그 길은 ‘북창동’이었다.

 

운동이 끝나고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150미터 남짓인데도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저녁 8시인데도 거나하게 취해서 서넛이 모여 양복바람으로 그 거리를 찾는 남성들은 대낮에 봤을 때와 달리 여성을 바라볼때 조금의 수치심 없이 노골적인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성이 이성을 일반적인 호감으로 볼 때의 눈과 다르다. 매번 나는 운동 후 땀 뺀 민낯으로 지나가지만 그 우호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않은 쎄한 느낌이 비단 내가 구질구질하게 하고 다녀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나와 간격을 두고 저 앞에 온몸을 꽁꽁 싸매고 모자를 눌러쓴 여성도, 나와 그녀 사이에 정장을 입고 방금 전까지 나와 운동하던 여성도 같은 시선을 받는다. 길 한복판에서 일면식 없는 여성이 자기 왼쪽에서 걸어와 오른쪽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들은 눈빛을 거둘 줄을 모른다. 그런 남자들을 관찰하다가 접근해 영업하는, 이어마이크를 귀에 찬 맨정신의 호객꾼들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이크 너머로 연결돼있을 누군가와 중얼거리면서 드러내놓고 위아래로 훑는다. 연령대, 옷차림, 인종 그 어느 하나 예외없이 모든 여성들이 그런 눈빛을 받으면서 그 거리를 통과한다. (서울 한복판, 시청에서 남대문 인근이니 당연히 혼자 걷는 외국인관광객도 많다.) 그 노골적인 눈빛은 그 거리에서 너무 일상적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걷는 것 뿐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정류장에서 남여 상관없이 너무 길게 불쾌한 눈빛을 보내면 나도 불쾌한 표정을 드러내고 맞서곤 했는데, 이 거리에서의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런 눈들이 일상인 곳에서는 그저 무섭다는 생각과 빨리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스친다.

 

북창동.

 

불현듯 살면서 들어온 북창동 이야기가 뭔가에 각성된 듯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대학교 다닐 때 어떤 선배는 “나는 그런 데 안 다니는데, 아는 형들이 몇 번 갔는데 말야~”라고 하면서 무용담처럼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떠들곤 했다. 북창동이든 강남이든 장소는 제각각이었지만 디테일만 조금씩 달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간 적 있는데, 어떤 식이냐면…”이 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 안 가본 사람 있을 것 같아?” 하기도 했다. 마치 방금 본 영화를 리플레이하듯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오만상을 찌푸리고서도 ‘진짜요?’ 하면서 끝까지 들었다. 심지어 학생 때는 그 이야기를 정색하지 않고 흥미롭게 듣는 것이 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인터넷 도시전설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던 남성들은 공통적으로 마치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와 거기서 일하는 여성은 별개의 종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니네랑 완전 다르지. 딴 세상 애들이야.’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꼭 한마디씩 했다. ‘멀쩡한 여자 대학생도 근데 그렇게 많대.’ 나도 대답했었다. ‘그렇구나. 어우 드러워, 왜 그렇게들 몸을 굴린대.’ 그 땐 그렇게 리액션하는 것이 잘한 건 줄 알았다.

몇 년 후 방콕에 갔을 때, 강남역 뺨치는 중심가인 아속 역 숙소로 가는 길에 낮에는 완전히 조용한 길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호스텔에서 만난 미국 여자아이와 호주 아저씨가 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친절했던 아저씨의 추천메뉴를 잘 먹고 한참을 놀다가 숙소로 가는 길, 완전히 죽어있던 그 거리가 밤에 깨어났다. 방콕 최대의 환락가라는 소이 카우보이였다. 비키니 입은 여성들이 바깥 테이블에서 아무렇지 않게 남자 관광객들 품에 안겨있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면서 지나가던 중, 누군가 Hey! 하고 우릴 불렀다.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바깥 의자에 앉아 허벅지 위에 체구가 자기 절반 밖에 안 되어보이는 앳된 아가씨를 올려둔 채로 우리에게 식사 마음에 들었냐며, 다음에 또 오라고 인사를 건넸다. 나와 친구는 기겁하고 일단 인사를 한 뒤, 우리끼리 이야기했다. “세상에 수치심 1도 없다 야. 웬 일이니. 저 아저씨 이 나라에 이런 식으로 너무 오래 산 것 같은데.”

마지막 날쯤 혼자 맥주 한 잔 하고 있는데 아빠뻘 한국 남자분 둘이서 속닥거리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혼자 여행하세요?” 설마 나를 여자로 보고 말 건 건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너무 놀라서 순간 얼어붙었는데 능글능글한 말투로 다시 묻는다. “아니 아가씨가 맥주를 혼자 드시니까~ 혼자 오셨어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치미는 분노를 누르면서 대답 대신 ‘왜요?’도 아닌 “뭐요?” 하고 대답했다. 나 자신도 느낄 정도로 날섰던 말이 나가자 그제서야 “아, 아니에요…” 하고 시선을 거둔다. 마시던 맥주를 한 번에 비우고서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이상한 관광을 너무 오래 하신 것 같은데. 현실감을 아예 잃으셨네. 저러고 한국 들어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서 사회생활 하겠지?

 

그리고 오늘, 북창동.

 

그 거리에서 나를 움츠리고 걷게 한 남성들을 생각한다. 평범하게 그 길을 지나가는 직장인과, 대학생과, 교복 입은 소녀와, 운동 마치고 후드점퍼를 입고 가는 민낯의 여성들을 북창동식 시선으로 훑던 눈들, 너무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더 나를 좌절시킨 눈들을 생각한다. 가정이 있으니 늦게 귀가할 수 없어 초저녁부터 저러고 앉아있는, 직장에서 입은 수트를 그대로 입고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저 눈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성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같은 모습을 한 여성들을 자기도 모르게 기괴한 눈으로 보는 저 사람들은 내일 또 멀쩡한 남자들 사이에 자연스레 섞여서 자신도 그렇게 선량하고 멀쩡한 남성인 척 회사에서,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여성들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매일 북창동을 다니는 여자다. ‘북창동을 다닌다’는 것에서 어떤 직업과 모습의 여성을 상상하든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시선을 받는다. 이건 사회 전체로 넓혀도 그렇다. 절대로 거기서 칼같이 구분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는다. 누군가의 손을 잡거나 곁에 두거나 혹은 그 이상을 몇 푼 돈으로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만나는 여성들을 인격체로 대할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을, 그 길을 몇번만 걸어봐도 알 수 있다. 여성과 맺는 감정적, 물리적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본전 생각이 나는 게 당연하다. 여성과 언쟁하게 되거나 여성이 어딘가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 ‘니 까짓 게’ 생각이 나는 게 당연하다. 여성에 대한 존중을 외치는 멀쩡한 남성들을 루저 취급하게 되는 게 당연하다. 얼마나 쉬운데, 저까짓 것들이 뭐라고, 쟤네 끽해야 얼마짜린데, 저런 것들 눈치 보는 놈들이 요즘 너무 많아 가식적인 등신들 해 가면서.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절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격체들과 분리되지 않는다. 구분될 리가 없다. 손길이든, 신체일부든, 전체든 간에 사람의 존엄을 판매하는 것은 이렇게 악한 일이다. 어느 날 일상을 무너뜨린다. 일탈, 쾌락같은 건강한 단어로 포장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쿨할 걸 쿨해야지.

다시, 내 눈을 보면서 북창동 무용담을 들려주던 선배가 생각난다. “다들 어쩔 수 없이 가긴 가지 니 남친이라고 안 갔을 것 같아?” 하던 다른 선배도 생각난다. “제 남자친구는 그런 애 아닌데요” 하면 나를 딱하고 순진한 여자애 보듯 하며 끝까지 열심히 가르치려 들고 내 남자친구를 거짓말쟁이 혹은 루저로 후려치려 들던 그 눈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마지막엔 항상 “근데 민지야, 거기 평범한 여대생들도 그렇게 많다더라. 요즘에는 그런 마인드인 애들 되게 많대.”하던 그 눈. 내가 북창동에서 귀가하며 느낀 기시감과 쎄함은 아마 그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리라.

그 눈을 한 선배에게 그 방의 여자후배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우린 그 사람들과 밥을 먹고 일상을 말하고 때때로 고민도 털어놨는데,
그것들은 또 다 얼마짜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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