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 청춘한테 왜 여행까지 하라고 난리인가

여행작가가 말하는 ‘청춘이라면 떠나야 한다’가 부당한 이유

 

‘청춘일 때 떠나보니 참 좋더라’‘청춘이라면 떠나야 한다’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하나는 말이고, 하나는 방구다.

 

 

*** 개인페이지 칼럼들은 제가 함께 작업했던 프로젝트나 회사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때려치고 여행을 했다고 했을 때, 그 여행이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 운 좋게 지금도 여행하면서 글을 쓰고 있을 때… 멋지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고 나는 그 칭찬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이야기도 듣는다.

 

 

“여행책들을 보고 있으면 제가 잘못 산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저만 빼고 다 여행하는 것 같아요.
청춘’인데,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건데
저는 지금도 당장 눈앞에 있는 것과 안정된 삶만을 추구하고 있어요.”

 

청춘.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 뽑아먹기 좋은 단어. 이미 모든 기업들이 ‘청춘’이라는 단어를 마케팅에서 한 번씩은 언급했다. 청춘은 가장 탓하기도 쉽고, 해준 것 없이 요구하기도 쉽고, 뭐든 해내라고 강요하기도 쉬운 존재가 되어있다. 돈 뜯어먹기도 당연히 가장 쉽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내가 바라보는 청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이 정한 ‘예의’를 벗어나지 않고 사회의 룰에 수긍하는 건실한 청년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틀 밖에서 사고해야 하고 도전정신과 패기가 있어야 한다. 현실은 최저임금 갖고는 생활도 하기 어렵지만 젊은 놈이 모든 걸 때려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세계일주도 한 번 해야 하고 할 줄 아는 취미생활 하나쯤 있어야 한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들 정도로 하루하루 허덕이지만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좀 있어야 하고 기성세대가 정한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어도 기성세대의 기준에 맞춰 자신의 인생을 살면 어리석다 소리를 듣는다. 스펙 쌓아서 대기업 안 가면 4대보험 보장받기도 힘들지만 스펙에 목매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꿈을 쫓으며 살아야 한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걸 쫓을 때 돈 못 버는 건 쿨하게 수긍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청춘이 아니니까.

 

…아이구야.

 

여행하지 않는 청춘을 어리석다 말하는 사회는 이래서 뻔뻔하다. 일단 십대 시절에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충분히 탐구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겨우 공부하면 어마어마한 등록금이 기다리고, 겨우 입학하면 스펙 쌓느라 아등바등해야 겨우 4대보험 챙기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사회.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 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20대~30대 초반에게 이제는 ‘떠나라’는 명령까지 한다. 떠나지 않으면 너는 미련해. 한 번쯤 다 버리고 떠날 줄도 모르면 너는 어리석어. 니가 사는 인생은 무의미해. 그걸 젊을 때 안하면 언제 해보겠니? 젊은 놈이 왜 그런 도전 한 번 없이 사니? 니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행에서의 며칠이 너를 훨씬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거야… 같은 말을 하면서.

까놓고 얘기해보자. 대한민국에서 20대가 떠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할까? 20대에 다 때려치고 어딘가로 떠나서 책까지 썼지만,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퇴직금이 있었고, 그 퇴직금을 나혼자 탕진해도 그저 내 통장이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20대에 몇천 만원의 연봉을 포기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돌아와서 빚더미에 앉는 상황도 아니었다. 귀국 후 카페에서 알바를 하든 뭐든 하면 연명은 할 수 있었다. 나의 여행이 나와 내 가족의 세상을 붕괴할 일은 없었다. 운이 좋았고, 마냥 감사할 일일 뿐이다. ‘청춘이라면 한 번쯤 떠나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고려가 결여되어있다.

 

첫번째.

청춘이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그들 탓이 아니라는 것.

 

알바 3개를 뛰어서 세계일주를 한 사람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도 어릴 때 그런 걸 한 번 해볼걸 하고 진심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알바 3개를 뛰어서 세계일주를 해놓고 ‘청춘이니까 이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알바 3개를 뛰어 겨우 빚을 갚아야 하는 청춘도 있다. 강의들을 시간 외에는 꼬박 일만 해야만 겨우 자기가 십대를 다 바쳐 입학한 학교의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는 청춘도 있다. 알바를 3개를 뛰든 10개를 뛰든 그 돈을 손에 쥐었을 때 여행보다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100개쯤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정도로 알바를 했는데도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은 그들이 아닌 사회의 잘못일 확률이 높다. 나는 내가 퇴직하고 그렇게 떠날 수 있었다는 것에 엄청나게 감사한다. 하지만 내가 멋있는 사람이어서,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나는 그저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을 뿐이다. 내가 번 돈은 다 내 돈이었기 때문에 내가 잃을 것도 내가 누릴 것에서만 차감되는, 어찌보면 감사한 상황이었을 뿐이다. 또한 나와 같은 경제적 상황에서 떠나지 않고 한국에 남아 새로 산 아파트 대출금을 갚거나 생활비로 사용했던 사람들 역시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존중하고 하루하루 힘껏 살아낸 것이지, 여행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더 쿨하고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아직 대한민국은 “청춘이라면 떠나야 한다!”를 외칠 만큼 청춘을 위해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없다. 지금 사회가 청춘에게 ‘청춘이라면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적정선의 학점만 있으면 기업체 중 어딘가는 갈 수 있었던 세대가 지금 미칠듯한 오버스펙에도 취업하지 못하는 2018년의 취준생에게 ‘눈 좀 낮추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오만하다. 그러면 그대들이 좀 더 노력해서 청춘이 떠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었어야지. 자신을 찾는 여행을 걱정없이 할 수 있고, 그것이 취업공백이 되지 않고, 스타트라인부터 빚이 없어서 조금만 욕심 버리고 용기를 내면 과감히 여행에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어야지.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러는 대신에 허덕이는 청춘들에게도 ‘젊으니까 떠나라!’ 하면서 다른 짐 하나를 얹을 뿐이다. 그렇게 청춘은 또다시 좌절한다. 열심히 사는데도 나는 뭔가 잘못 사는 것 같아.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을 성실하게 돌아보며 산 것이 최선인 줄 알았는데, 난 그냥 바보였나봐. 나는 눈 앞에 닥친 일과 안정된 삶만을 추구하고 있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회가 청춘에게 판을 그렇게 짰다. 눈 앞에 닥친 것만을 하기에도 허덕이도록, 안정된 삶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도록. 사회가 짜놓은 가혹한 판이지만 어떻게든 그 위에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것은 그것 역시 다른 색깔의 열정이고 패기일 뿐, ‘잘못 산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번째,

청춘에겐 떠나는 것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찾을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

 

떠날 수 있는 청춘은 아름답다. 과감히 떠나는 용기는 멋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여행이 아니라도 나를 찾거나 의미있는 경험은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청춘의 장점은 그런 것이다. 일상의 작은 것도 다른 시선으로 볼 줄 안다는 것. 사회가 청춘에게 끝없이 기성의 시선을 강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들만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시선 끝에 닿는 것이 꼭 여행지가 아니어도 된다. 청춘이 청춘이어서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여행은 마법의 단어가 아니다.

지금 여행은 너무 많이 포장되어있다. 내가 미친듯이 추천받았던 모 미드를 일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봤는데 막상 기대에 비해 쥐뿔 아무것도 없었던 경험마냥, 여행이 그럴 때가 정말 많다. 우리 모두가 눈덩이처럼 불려놓은 여행의 환상이 사실은 현실보다 혹독할 때도 있다. 여행은 지극히 개인화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만큼 흡수할 수 있는지는 내가 어떤 상황인지에 아주 많이 좌우되고,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여행이다. 여행 중에 ‘이 비행기표값이랑 호텔비 뭐 뭐 하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게 참 많았을텐데…’ 생각이 드는 것은 속물이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실제로 여행에 돈을 쓰는 것이 최선이 아닌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행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과대평가되어있다. 내가 나를 위해 줄 수 있는 선물 중 하나가 여행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최고의 선물이 여행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차선책이 차고 넘친다. 다만 요즘 여행이 너무 트렌드가 되어있을 뿐.

청춘들이여, 그대들이 여행까지 안해도 그대들은 충분히 멋지게 잘 살고 있다.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현재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여행만큼이나 그것 역시 청춘이니까 지금이나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겁쟁이가 되는데, 그것은 여행할 용기가 없어진다는 의미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여행하고 싶은데 현재를 위해 참을 용기’가 없어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여행할 상황이 아닌데 도망치듯 타이밍 생각 안 하고 여행하는 어르신들을 나는 수도 없이 보았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고. 여행은 애초에 그렇게 대단하고 거대한 것이 아니다. 오늘 밤에 내가 시킬 치킨 같은 것이다. 있으면 행복하고, 치킨이 있어서 내 삶은 더 나아졌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오늘 밤에 치킨을 안 시킨다고 해서 그게 내 삶에 무언가가 결핍되어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청춘에게 너무 여행하라고 지랄하지 말자. 다이어트, 패션, 문화생활에서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니가 돈 안 대줄거면 참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여행은 좋은 것이지만 여행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을 힘껏 사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니까. 그런 삶 사이에 시기가 언제든 여행이 끼어든다면 양념처럼 기쁠 뿐이다.

 

우린 잘 살고 있다.

여행 따위 없어도, 다들 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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